우리들의 도둑맞은 어휘력을 찾는 필사적 여정
고도연 2024-09-27
우리들의 도둑맞은 어휘력을 찾는 필사적 여정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사람은 자기 세계 밖에 있는 상대의 언어를 ‘당장’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We cannot think what we cannot think)”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中
20세기 최고의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와 세계에 대한 통찰은 현대에서도 아주 유효합니다. 언어는 인간의 기본 표현 양식이자 무수히 많은 상징과 은유를 포함하는 고도의 소통수단인데요. 특히 최근 문해력 저하 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면서 비트겐슈타인의 명언이 종종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흘과 나흘’의 논쟁처럼 ‘우천시가 어디에요?’나 ‘추후공고가 무슨 고등학교냐’라는 질문들이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 사례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성인들이 스스로의 어휘력과 문해력 부족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아 졌어요. 사실 일상에서도 금일과 명일이 헷갈리기 일쑤이고 혀 끝에 말이 맴돌다 끝나는 때도 부지기수죠.
이런 고민을 타파하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NHN 계열사인 종합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출간한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유선경 저)>인데요. 3월 출간 이후 오랜 기간 인문/교양 부동의 1위를 유지하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이 책은 ‘할 말은 많지만 쓸 말이 없는 어른들을 위한 숨은 어휘력 찾기’를 주제로 엮은 필사 책입니다. 저자인 유선경 작가는 이미 <어른의 어휘력>, <감정어휘>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로 고심 끝에 어휘력, 문해력, 집중력을 한 번에 키울 책을 내놨다고 합니다.
지혜의 상징 부엉이를 모티프로 독자 중심의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위즈덤하우스는 일찍이 출판 명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올 여름은 NHN과 위즈덤하우스가 처음으로 특별 이벤트를 함께 기획하며 플레이뮤지엄을 필사 열풍으로 꽉 채우고, 어휘력의 중요성을 ‘134챌린지’로 알렸는데요. 우리들의 도둑맞은 어휘력을 찾기 위한 필사(筆寫)적 여정을 인사이드NHN에서 담아 보았습니다.
키보드 말고 만년필이요! 이 구역 필사왕은 바로 나야 나!
뜨거운 관심 속에 마무리되었던 1차 사내 이벤트(‘부족했던 어휘력 때문에 난감했던 순간’과 ‘필사를 위한 최강 필기구 조합’을 댓글로 남기는 이벤트)가 끝나고서 바로 134 챌린지를 열었어요.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에는 총 134편의 필사하기에 좋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작가는 니체에서 김애란까지 동서고금을 아울러 따라 쓰고 생각할 수 있는 문장을 선별했습니다. 134 챌린지는 이렇게 좋은 문장을 실제 따라 써보고 어휘력 증진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하루에 1번, 3분만 시간 내어 읽고, 4(사)색의 시간을 갖고 필사를 하자’는 내용이었죠.
도서를 직접 갖고 있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필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간도 꾸몄습니다. NHN플레이뮤지엄 1층엔 라이브러리 딥이 있는데요. 책과 함께 사유할 수 있는 곳에 필사 공간을 조성했습니다. 지나가다 오며 가며 필사를 직접 하기도 하고 다른 임직원분들이 쓴 필사를 볼 수 있도록 책을 펼쳐 두었어요. 필기구는 문구 애호 직원분들에게 추천 받은 연필, 펜들로 채워 두었습니다.
두근두근. 라이브러리 딥에 마련된 필사 공간이 열리고 걱정 반 기대 반이었는데요. 필사 공간은 약 3주 가량 운영되었고, 도서 총 6권이 빼곡하게 우리 NHN 직원분들의 글씨로 채워졌습니다. 같은 문구를 이어서 쓰신 분도 계셨고 귀여운 캐릭터나 일러스트를 남겨 주신 분도 계셨어요. 한 여름의 낭만이 깃들어 있던 필사 공간의 추억은 현재 라이브러리 딥 서재 한 켠에 책들과 함께 보관되어 있습니다.
숏츠보다 손글씨가 더 필요한 이유, 필사는 몸으로 하는 독서
지난 9월 11일 NHN 플레이뮤지엄 10층 위플레이스에서는 북토크가 열렸는데요.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의 저자인 유선경 작가를 초대해 ‘도둑맞은 우리의 어휘력을 붙잡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날 북토크는 저자의 강연과 QnA 시간으로 진행되었는데요.
연단에 오른 유선경 작가는 “우리는 경험한 것만 알 수 있고 그 외의 것은 미지의 영역이며 언어도 마찬가지”라고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어휘력과 문장력이 좁아지면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의 폭도 확연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인데요. 필사는 몸으로 하는 독서라며 꾸준한 필사는 어휘를 익히고 맥락을 공부하고 이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일상을 대하는 경험의 정도가 풍성해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강연 슬라이드 첫 장엔 사전 질문을 통해 접수 받은 내용들이 나타났는데요, 작가는 특히 “30대 중반입니다.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비슷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대화를 해왔는데도 요새 유독 어휘력이 저하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의 고민글 속에 정답이 있다고 화답했습니다. 어휘력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이유가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비슷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대화를 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는데요. 환경을 다채롭게 바꾸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만 어휘의 폭이 넓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세계의 확장을 위해 낯섦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전질문 중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는데요. 몇 가지를 소개하면 챗GPT를 다방면에 활용하고 있는데,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작가님은 최근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본인도 챗GPT를 적극 활용한다고 답했는데요. 정보를 입력했을 때 나오는 결과값에 주목하는 것과 동시에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와 해석이 달라지는 현상 자체에 주목한다면서 질문하는 방식에 우리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어떤 도서를 추천하냐는 질문에는 책에 나온 134개의 문구가 실린 모든 책들은 추천한다는 답변도 이어졌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꼽은 문장이고 동시에 전문을 실을 수 없었기에 전체 책의 맥락에서 문구를 다시 들여다본다면 말맛이 다시 느껴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완연한 독서의 계절, 필사가 주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보세요
필사는 단순 베끼기와는 다른 힘을 지녔습니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어요. 글 쓰기가 걱정거리를 완화시키고, 종이에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는 중요한 감정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신경과학과 매튜 리버만 교수팀은 시를 쓰는 행위가 자기조절과 관련된 뇌 활동을 증가시키고, 긍정적 생각을 관장하는 부위인 전전두피질의 활동을 증가하게 만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손을 쓰면서 메모를 하면 기억이 더 잘 되고 인지력이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프랑스 마르세유대학교 진-루크 벨래이 교수팀은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알려지지 않은 알파벳(unknown alphabet)을 가르치는 연구를 계획했습니다. 한쪽은 손으로 글자를 쓰면서 배우게 하고, 다른 한쪽은 키보드를 사용해서 배우게 했어요. 2주일 뒤 알파벳 기억력을 측정한 결과, 읽고 쓴 그룹의 사람들의 성적이 훨씬 좋았습니다. 손을 쓰는 일을 자주 하면 치매위험이 30%나 낮아진다는 결과도 있어요.
이쯤 되면 몸으로 하는 독서, 필사의 효용은 이미 충분히 입증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필사가 주는 잠시의 멈춤과 일상의 여유는 우리에게 스스로 돌보는 힘을 기르게 해주는데요.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리뷰 중 그런 대목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하루를 숏츠로 마무리하고, 의미없이 핸드폰만 보다 잠드는 습관이 반복되었는데 필사를 하려고 보니 연필을 잡은 손과 글씨가 어색하다고요. 하지만 이내 시간이 지나니 차분해지고 문장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하루를 평온하게 정리하는데 큰 힘이 된다는 말들이요.
이제, 완연한 독서의 계절입니다. 날씨도 제법 쌀쌀해졌죠. 여름 내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필사적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도둑맞은 어휘력도 찾아와야 하고, 어휘력 곳간을 풍성하게 채워 표현력까지 두둑이 챙겨야 하니까요. 우리 모두의 필사적 여정이 계속되기를 NHN 커뮤니케이션실이 꾸준히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