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 위에서 만난 한중 청소년들, AI '한돌'과 함께 우정을 두다
양준혁 2026-08-10

지난 7월 21일 오전, 전북 익산의 한 호텔 연회장이 여느 대국장보다 조용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으로 채워졌습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온 중학생 바둑 선수 8명이 나란히 앉은 자리, 이들 앞에 놓인 건 전통적인 바둑판이 아니라 노트북이었습니다. 화면에는 '한게임 바둑'이 켜져 있었고, 학생들은 이 화면 너머의 상대와 마주했습니다.
NHN이 자체 개발한 바둑 AI, '한돌(HanDol)'입니다.
'제19회 한중 청소년스포츠교류'에 바둑 종목이 새롭게 이름을 올린 첫해. 한돌과 함께한 훈련 현장을 지금부터 전해드립니다.
18년 만에 바둑이 더해진 이유
한중 청소년스포츠교류는 한국과 중국의 중학생들이 스포츠로 우정을 다지는 국제 교류 행사입니다. 대한체육회가 주최하며, 2008년부터 농구·탁구·배드민턴 세 종목으로 매년 이어져 왔죠. 올해는 지난 1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미래세대 교류 활성화'의 흐름 속에서 바둑이 신규 종목으로 처음 추가됐습니다.

바둑은 한중 양국이 오랫동안 함께 가꿔온 대표적인 두뇌 스포츠입니다. 언어가 달라도 바둑판 위에서는 수담(手談), 즉 '손으로 나누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번 교류의 취지와도 꼭 맞아떨어지는 종목이었습니다. NHN은 국내 대표 바둑 AI '한돌'로 양국 학생들의 합동훈련을 지원하며 이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7월 19일부터 25일까지 7일간 이어지는 이번 교류는 합동훈련, 종목별 공식경기, 문화탐방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한돌을 활용한 합동훈련은 21일 오전 9시부터 2시간 동안 익산 웨스턴라이프 호텔에서 진행됐고, 양국 각 4명씩 8명의 학생과 지도자와 관계자들이 함께했습니다.
카메라가 몰려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

행사 시작 전부터 연회장은 이미 북적였습니다. 수많은 양국 관계자들이 자리해 관심을 보였고, 여러 대의 카메라가 쉼 없이 돌아갔죠. 장내가 살짝 소란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훈련을 진행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미동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도 이들은 흐트러짐 없이 화면에만 집중했습니다. 알고 보니 바둑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관전객과 카메라 앞에서 대국하는 상황에 익숙하고, 이기고 지는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는 훈련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있다고 합니다.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매우 정적인 모습으로 보여지는 이 현장. 하지만 선수들의 내면에는 엄청난 승부욕이 불타오르고 있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라고 해요. 승부에 대해 표현하는 모습이 다른 스포츠와 다를 뿐이죠.

또 하나 눈에 띈 장면은, 학생들이 훈련에 쓰인 '한게임 바둑&오목'을 다루는 손놀림이었습니다. 한게임 바둑을 처음 접하는 한국 학생들도 많았는데, 다들 금세 익숙하게 화면을 조작했고, 한국어로 되어 있는 인터페이스임에도 중국 학생들 역시 별다른 어려움 없이 편하게 사용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정식 설명 시간이 마련되기도 전이었는데 말이죠.
'한게임 바둑&오목'이 지난해 대국실을 개편하며 누구나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UI와 UX를 다듬어온 덕분에, 언어와 숙련도를 뛰어넘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환영 인사와 함께 시작된 특별한 두 시간
행사 시간이 다가오자 관계자들이 자리를 채웠고, NHN 정책지원실 김재환 이사와 한국 바둑 선수단 최성엽 이사의 환영 인사로 훈련이 시작됐습니다.
김재환 이사는 이번 행사에 NHN이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이라 전하며, 한돌이 양국 선수들의 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최성엽 임원은 프로그램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안내를 맡았고, 중국 측에서 궁금한 점이나 막히는 부분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어 NHN GB스튜디오 송은영 PD가 훈련 프로그램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훈련은 두 갈래로 나뉘어 진행됐는데요.
• 한돌 챌린지: 프로기사급 AI와 맞붙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3명·3명·2명씩 나눠 각 30분씩 진행했습니다.
• 한돌 레벨테스트: 9단계 레벨 중 자신의 기력에 맞는 단계를 골라 대국하는 아마추어급 방식으로, 한돌 챌린지 순서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한국어와 중국어로 꼼꼼하게 작성된 매뉴얼이 준비돼 있어 언어 장벽으로 인한 어려움도 크지 않았습니다.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송은영 PD와 김유환 전임이 곁을 지키며 학생들이 매끄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도움을 줬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훈련 내내 양국 코치들도 자국 학생들 곁을 지키며 조언을 건넸습니다. 특히 한돌 챌린지에 나선 학생들의 표정에는 고민이 짙어 보였는데요. 프로기사급 AI의 실력이 예상보다 훨씬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훈련을 마친 학생들의 인터뷰에서도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는 소감이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좌)심효준 군 (우)왕 요우송(王宥淞) 군
한국 대표로 나선 심효준(서울 성서중) 군은 이번 교류를 앞두고 지난 7월 9일 프로 입단이라는 겹경사를 맞은 주인공입니다. 그는 한돌과의 대국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고 털어놓으면서도, 오히려 그 점 때문에 훈련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여러 기력대를 상대할 수 있고 자신의 약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앞으로도 한돌로 연습을 이어가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큰 규모의 국제 교류전에 참가하게 된 것 자체가 영광이라는 소감도 덧붙였습니다.
중국 대표로 참가한 왕 요우송(王宥淞, 하이난 화교중) 군에게는 이번이 첫 방한이었습니다. 다행히 낯선 나라에서의 식사가 입에 맞았다고 하는데요. 한돌 훈련에 대해서는 "기력이 매우 강해 훈련하기에 좋다"며, 상대할 수 있는 단수가 더 다양해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습니다. 그에게 더 뜻깊었던 건 한국 학생들과 마주 앉은 순간 자체였습니다. 서로의 기력 차이는 물론, 두 나라의 바둑 교육·지도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도 대국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승부를 넘어, 서로에게 배운 시간
학생들 곁을 지킨 두 코치의 이야기에는 공통된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승부보다 앞선 건, 아이들이 좋은 친구를 사귀고 즐거운 경험 속에서 한 걸음 더 성장하길 바라는 어른들의 따뜻한 시선이었습니다.

(좌)김정환 코치 (우)판보(潘波) 코치
한국 대표팀 김정환 코치는 익산 출신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한중 청소년스포츠교류가 고향에서 처음 열린 것부터 감회가 새로웠다고 전했습니다. 학생들이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으면서도, 정작 승부보다는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데 더 마음을 쓰는 듯했다는 게 그가 지켜본 소감이었습니다. 그가 학생들에게 건넨 당부도 같은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승부도 중요하지만, 교류를 통해 좋은 친구를 사귀고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는 것이었죠. 그는 훈련 자체에 대해서도 후한 평가를 남겼습니다. 학생들이 AI를 접해본 경험은 있어도 이렇게 전문적인 시스템을 갖춘 훈련은 쉽지 않았던 만큼, 한돌을 통해 연습경기와 공식경기를 제대로 대비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는 것입니다.
중국 대표팀 판보(潘波) 코치가 학생들에게 전한 당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기술적인 방면에서도 많이 교류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것. 그는 이번 훈련의 진짜 가치가 승패가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고 봤습니다. 양국 선수들이 서로의 기술적 부족함을 확인하고 함께 성장할 기회를 얻은 것, 그것이야말로 이번 자리가 남긴 가장 큰 성과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한돌의 실력에 대해서도 분명한 평가를 남겼습니다. AI가 명확한 정답을 제시해주는 만큼 큰 도움이 됐다며, 한돌을 "매우 훌륭한 학습 도구"라고 표현했습니다.

대한체육회 청소년체육부 소형석 부장의 이야기에는 이번 훈련이 남긴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바둑은 다른 종목보다 정적인 편이라 훈련 프로그램 구성에 고민이 많았다는 그는, AI를 활용한 훈련이 신선한 접근이었다며 앞으로 다른 종목에도 AI 훈련 프로그램을 확대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돌'은 NHN이 1999년부터 '한게임 바둑'을 통해 쌓아온 방대한 기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체 개발한 AI 바둑 프로그램입니다. 2019년에는 이세돌 9단의 은퇴 대국 상대로 나서 3전 2승을 거두기도 했죠. 이후로도 다양한 수읽기 알고리즘 연구를 접목하며 꾸준히 고도화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NHN이 서비스하는 '한게임 바둑&오목' 역시 지난해 대국실 개편을 통해 한돌과의 수준별 대국, 실시간 승률 분석, 형세 판단 등 AI 기반 기능을 갖추며 대표적인 마인드 스포츠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수담으로 나눈 우정, 다음은 중국 싼야에서

합동훈련을 마친 양국 학생들은 7월 23일 오전 본격적인 공식경기를 치렀습니다. 승부의 결과와 별개로,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수담'으로 교감하며 쌓은 우정은 양국 학생들에게 오랫동안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한국 선수단은 오는 11월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를 답방해 양방향 교류의 열기를 이어갈 계획입니다.